국내오디오 野史(5) - 국내 오디오 상가
국내 오디오 상가
우리 나라에 오디오라는 문화가 꽃피운 시기는 1970년대 말경이지만 50년대부터 60년대까지는 라디오와 유성기가 공전하는 시대였다. 당시의 오디오 상점은 지금의 형태와는 다른  것으로 라디오 수리 상이나 레코드 음반을 파는 곳에서만 몇 종류의 사제 전축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 50년대의 오디오 상점이란 SP음반이나 소형 라디오 등을 취급하고 있을  정도의 규모였다. 특히 8.15 해방과 더불어 6.25란 엄청난 민족간에 비극은 일본인들에 의해 운영되어온 다소의 전자산업 시설물 등마저 파괴, 황무지로 만들어 버렸다.
전자산업의 불모지였던 60년대까지 당시의 상황에서는 SP음반이나 유성기를 판매하는 곳이 오디오상점의 시초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당시 소개된 제니스사의 라디오는 모든 사람들이 갖고 싶은 음향 기기 중 하나로 손꼽혔다.  
가장 인기 있었던 제니스 라디오

테레푼켄 라디오


일제시대의  오디오  상점
유성기가 우리 나라에 보급된 것은 일제하에 있었기에 상당히 빠른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1910년 미국과 일본이 일본에 日美蓄音機 제조 주식회사를 설립, 니폰 혼(Nippon Horn) 상표를  내놓기 시작했다. 이 회사가 우리 나라에 진출, 지금의 충무로 5가에 해당되는 본정 오정목(本町 五丁目)에 상점을 차리면서 시작되었다. 1913년 9월13일자 매일신보에 다음과 같은 광고기사가 실렸다.
“2원 짜리 레코드 1장이 1원으로 가격을 내렸다”는 것과 “조선명창들이 조선 고유의 명곡을 녹음했다.”라는 선전문구 이었다. 그러나 유성기라는 기기 자체가 일반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과 같은 존재여서 유리창안에 진열되어 있는 제품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일종에 부위 상징적인 존재가 바로 유성기 얻다.
8.15 해방 직전 본 정통(지금의 충무로 2가)에 동경전기란 오디오 전문상점이 있었다고 고인이신 김용채 선생님이 필자에게 들려주신 일이 생각난다. 이분은 만주에서 통신기 엔지니어로 종사한 일이 있는데 당시에는 일본의 내셔널(지금의 파나소닉)시설을 인수, 음향기기를 조립하면서 국내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하신다.
50년대를 전후로 해 음악을 위한 프로그램 소스로는 SP 음반이 전부였는데 6.25이후 60년대 말경에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45회전용 일명 도넛 음반이 소개되면서 전축에 관심이 많아졌다. 외국에서 들어온 78회전 SP음반은 중량감있게 두툼한 것이였는데 주로 컨트리 송 등이  선보였지만 이를 사용하기 위한 유성기가 고가여서 상류층 가정에서나 사용될 정도로 귀한 것이었다. 당시의 유성기나 콘설 형 전축은 마치 부의 상징적인 존재로서 군림, 가보로서 취급될 정도였다. 여하간에 SP시대의 음반이나 유성기가 요즘에 와서는 다시 휘기 품으로 둔갑, 50년대의 위치로 다시 돌아 간 듯한 느낌이다.

60년대의  오디오  상점
1950년대 말부터 60년대 초기까지 유성기나 전축하면 거이기 종로나 충무로 쪽의 전축상점들을 기억나게 한다. 9.28 수복 이후 수도 서울은 전 시가가 거의 황폐화한 상태여서 명동  천주교와 시공관(현증권거래소)이 상징적인 존재로 남아있을 때였다. 더구나 충무로나 명동이 한눈에 보일 정도였는데 점차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자 임시로 지어진 상점들이 생기게 되었고 그중 눈에 띄는 것이 라디오나 음반 등을 파는 상점들이 이었다.
1960년대 명동 거리

1960년대 명동 성당 주변 거리

이들 가게에서는 당시 유행하는 대중 가요 곡을 SP음반과 확성 장치를 이용, 길가는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는데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어떤 상점의 쇼 윈도우에는 유행 음악 가사까지 붙여놓고 노래를 따라 부르도록 배려한 곳도 있었다. 이들 가게에서는 당시 유행하는 대중 가요 곡을 SP음반과 확성 장치를 이용, 길가는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는데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어떤 상점의 쇼 윈도우에는 유행 음악 가사까지 붙여놓고 노래를 따라 부르도록 배려한 곳도 있었다. 우리 나라의 오디오 상점을 얘기하자면 충무로와 청계천(복개가 되기 이전)그리고 종로 쪽을 들 수 있으며 부산은 광복동의 국제시장이 있다. 충무로의 전문 오디오 상점이라고 하면 9.28수복 이후 엔젤사라는 레코드와 라디오 상점 주변을 살펴볼 수 있다.
지금의 세기전자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엔젤 사에는 항시 내 놓으라고 하는 많은 오디오 파일들이 출입이 잦은 곳으로 바로 위쪽으로 20메타쯤 올라가면 기쁜 소리사가 있었다.  아마도 70년대에 있어 충무로의 “기쁜 소리사” 라고 하면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었다.
1960년대 부산 광복동거리

서울 충무로의 엔젤사 상점 모습

특히 당시 오디오파일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하이엔드 제품들 대부분을 이곳 상점에서 볼 수가 있었는데 하드웨어는 물론 소프트까지 취급하고 있어 편리하게 많은 사람들이 이용 할 수가 있었다. 특히 신 세기 백화점의 전신인 동아 백화점 2층 전축 부는 독일 그룬디익(Grundig)이나 텔레폰켄(Telefunken) 등을 수입해 판매하는 코너가 있었고 진공관 라디오 간이식 전축을 본격적으로 국내에 선보였다. 가장 많은 오디오 제품들을 취급하고 있는 쪽은 충무로 사보이 호텔 앞쪽에 전음사, 대연 각 호텔 쪽의 음향센터 그리고 애음사 등 이 있었다.  전음사를 개업한 황재복씨는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한때는 '마이크 황'이란 애칭까지 갖고 있었을 정도로, 단신 월남 권투생활을 하다가 오디오와 인연을 맺은 분이셨다.
스테레오 시스템이 처음 소개될 60년 대 초 황씨는 자신의 상점 앞 길가에 시스템을 설치해 놓고 입체음향을 들려주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음은 물론 입체음향이 무엇인가를 알리는데 공헌을 한 분이다.
또한 일본 진공관 앰프 메이커인 산스이(山水)이와 파이오니아사의 제품을 수입해 판매한 곳이 음향센터였는데 당시 파이오니아사의 진공관 리시버 앰프인 모델 Q300이나 SM 시리즈는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좋은 제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음향센터를 운영하던 사장은 미군들이 PX로 사용하던 신 세기 백화점에서 철수하자 백화점 개점과 동시에 점포를 차렸다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쫓겨났다는 일화도 있다. 종로 쪽은 YMCA 부근에 있었던 좋은 소리 사를 들 수 있으며 전문 오디오 상점은 소규모이지만 청계천 쪽에 가장 많이 모여 있지 않았나 한다.
청계천 쪽엔 필자가 단골로 출입했던 최경복 씨가 운영하던 문화 소리 사를 비롯해, 입체 음향 사, 영락 소리 사 등인데 이중 영락 소리 사는 지금도 PA 장비 등을 취급하는 대규모의 중소기업으로 발전했다. 청계천 쪽은 아세아 극장이 세워지기 이전 그러니까 청계천 복계 공사가 있기 이전 영락 소리 사를 비롯해 문화전파사, 후에는 삼덕무선 등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이 계속 늘어 영국의 AXION 스피커를 수입해 판매하던 서울전자 등이 청계천 주변에서 개업을 시작했다.
항구 도시로 제2서울인 부산은 외국인들이 출입이 잦아 1960년대부터 외국 전자제품이 가장 많이 거래되었던 곳이다. 특히 배편을 이용한 소형 제품들이 많이 들여왔었고 거래도 활발했다.
부산 오디오 상점들이 있는 거리 모습

부산의 오디오 거리라고 하면 중구 광복동을 위시해 신창동, 국제 시장 주변을 들 수가 있다. 국제시장 뒷골목에서는 소형 포터블 전축을 비롯해 일본제 라디오와 제니스 라디오 등과 같은 제품이 많았다. 특히 진공관 부품과 레코드를 판매하는 상점이나 노점상등이 있었으며 그중 신악기란 레코드 상점은 많은 음반 수집가들이 단골로 다니는 곳이었다. 광복동의 국제시장이 당시에는 이름 있는 오디오 전문상점들이 하나 둘 들어섰다. 이중 고려 라디오를 비롯해 아리랑 무선사 그리고 문화전파사, 삼진전자, 제일전파사나 트랜지스터 라디오 생산까지 한 아리랑무선 그리고 창선 동의 형제무선 등을 들 수 있다. 이외에는 사상구 감전동의 문화전자, 전포동의 문화전파사 등도 잘 알려진 상점들이다.
한때 '콘셀트'란 상표를 제작해 판매하던 곳이나 서독 제 "SABA" 전축 등을 판매하던 상점들이 눈앞에서 아롱거릴 뿐 60년대 초반에 국내 오디오 상점 등 을 지금에 와서 재조명해 볼 때 충분한 자료가 없어 기술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그러나 1970년 후반에 와서는 경기 침체와 더불어 교통편이 원활해지면서 고급 제품을 찾는 분들이 서울에서 제품을 구입해 주고 있어 전문 오디오 상점들이 전보다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1982년에 와서는 오디오 전문 상점들이 기존상가의 유지와 공동 보조를 위해 부산 전자협회를 조직 운용해 왔으며 오디오 세미너와 신제품 발표 등 소비자와의 대담 시간을 마련하는 행사도 갖았다. 비교적 오디오 파일들이 많았던 곳이 대구다. 그래서 그런지 대구쪽에서 하이엔드 오디오로 음악을 줄기는 분들이 많았다. 대구하면 중심가인 동선로를 연상하게 되는데 이곳에 있는 교동 시장은 일명 도깨비 시장이라고 불었던곳이다. 많은 외국산 가전 제품 판매 상점들이 있었으며 상당수의 수입 제품도 이곳에서 거래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곳에서 영남 일대에 물량을 공급해 주었고 특히 피난시절부터 진공관을 사용한 라디오나 전축 등을 판매하는 곳이 많았다.  
대구 교동시장의 오디오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 거리 모습

1980년까지 이곳에서 오디오 제품을 취급하던 곳은 대성 소리사를 위시해 서울전자, 아주전자, 로얄전자, 대구전자, 고려전자 등이 기억되며 이외에도 중구 공평동에 있는 청음 오디오를 위시해 중구 문화동의 대구소리사, 중구 동문동 동아오디오 등은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 하이엔드 오디오 상점이다.  
국내 시장에서 인기 있었던 영국 Goodman사의 Axiom 스피커 유닛들

중고 오디오 삼성에서는 미국PX에서 유출된 미국 오디오 제품과 일본 제품들을 진열대에 전시 손님들을 관심을 끌었다

국내에서 제작된 수준급 디자인을 보여준 정풍물산의 Matnaga 시리즈 400